오랜만에 PC통신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했었던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과 전문의이자 컴퓨터에도 오랫동안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는데, 대화를 하다보면서 자연스럽게 주제도 컴퓨터에 관련되었던 내용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토픽은 “수많은 하드웨어를 사용해봤지만 아직도 그 때 쓰던 쿠리어 모뎀만한 걸 아직 못 봤다”였는데 많은 걸 생각하게 된 이야깃거리였죠.

요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다이얼업 모뎀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최소한 ADSL을 쓸지언정 PC내부에서는 100메가급 랜카드나 기가비트 랜 인터페이스를 장착하고 있죠. 하지만 불과 2000년 전후만 해도 다이얼업 모뎀은 가장 널리 쓰이던 정보통신 기기였습니다.


아직도 절대지존으로 남아 있는 USR쿠리어 모뎀
지금은 사용법도 가물가물하겠지만 모뎀을 이용하기 위해선 ‘ATDT014XX’등의 명령어를 입력하곤 했는데요, 수많은 모뎀들이 마치 요즘의 그래픽카드처럼 난무하고 있었던 그 시기에 US로보틱스의 쿠리어(Courier) 외장형 모뎀은 단연 최강의 제품이었습니다.

레전드급 가젯 'USR 쿠리어' 외장형 모뎀

외장형이라 어떤 OS, 어떤 플랫폼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접속시 안정성과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한 통신규격 유연성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최고를 지향하던 제품이었죠. 이 모뎀의 당시 가격이 50만원 정도 했었는데, 일반 내장형 모뎀들보다 10배도 더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구입하면 무조건 믿고 쓸 수 있다”는 이유로 파워유저들에게 높은 신뢰와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미국에선 현재도 $289.95에 판매되고 있군요.)


좋은 제품들, 하지만 어딘지 2% 부족한…

왜 이 얘기가 흥미로웠냐 하면 우리는 현재 수많은 IT디바이스들 속에 묻혀 살고 있는데 과연 그 중에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지 100% 정확한 동작을 해주는 기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T43이라는 PMP를 쓰고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한 편 볼라치면 기나긴 부팅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PC에서는 멀쩡히 재생되는 파일이 중간중간 다운도 심심찮게 되고 아예 기계가 먹통이 돼서 다시 또 부팅시간을 기다려서 재생을 시키게 되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만, 업체의 답변은) 원래 그런게 당연한 거랍니다.

"이번 편도 무사히"를 기도하고 봐야 하는지


저는 현재 SV-420이란 휴대전화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통사 문제인지 단말기 문제인진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심심찮게 상대방의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발생합니다. 목소리를 높여 “여보세요?? 여보세요?!!”만 연발하다 결국 다시 걸게 됩니다. 다양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지만 이것저것 만지다보면 다운되는 일이 발생해 리셋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쓰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D70이라는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는 대로 좌녹우적이나 블루밍, 모아레 같은 태생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촬영할 일은 별로 없다고 해도 맑은 날 좌녹우적을 경험하고 촘촘한 패턴을 가진 옷에서 모아레 현상은 생각보다 자주 생기더군요. 게다가 메모리카드 슬롯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지 CF카드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저는 현재 윈도우XP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할 말이 없군요.


조금만 더 분발해줬으면 했던 D70


신뢰성 100%의 가젯을 쓰고 계십니까?

아주 매몰차게 말하면 위의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팔면 안되는 물건들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기업은 출시할 수밖에 없게 되고 소비자들은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그나마 상기 언급한 제품들이 무슨 하자덩어리도 아니고 나름대로 각자의 카테고리에선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던 완성도를 가진 제품이라는 사실에서 쿠리어 모뎀이 떠오르게 됩니다.

물론 쿠리어 모뎀과 현재의 가젯들은 그 기능이나 집적도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전원을 켜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이유 없이 그 가젯을 통한 행동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 게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즘은 그런 제품이 그리 많아 보이질 않습니다.

지금 제가 쓰는 기기들 중 그에 근접한 것은 크리에이티브의 기가웍스2.0 스피커와 세진의 기계식키보드, 보쉬의 IXO전동드라이버 정도뿐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역시 단순한 기능만 내장된 기기들인 것 같군요.

여러분들은 어떤 디바이스 때문에 골머리를 썩혀본 경험이 없으신지요? 그리고 복잡한 기능을 구현하는 가젯들 중 왕년의 USR 쿠리어 모뎀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쓰고 계신 것이 혹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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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1 22:41

    생각해보니 제가 쓰고 있는것중 한번도 속을 썩히지 않는 녀석은

    로지텍의 V270 블루투스 마우스군요.


    단순한게 최고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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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aton
      2007.08.12 00:05

      예, 로지텍의 마우스 중에 신뢰도가 높은 제품들이 많지요. 말씀하신대로 단순하면서도 예술의 경지에 오른 제품, 그게 진짜 명품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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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8.11 22:44

    V43을 쓰는데 저도 동영상 재생시 자주 다운되거나 리붓되더군요. 처음에는 불량프레임때문인줄 알았는데, 동영상을 재인코딩해도 그런경우가 많더군요.
    열받아서 각종 실험을 해보니...동영상 해상도가 문제더군요. 최적해상도로 작게 재인코딩했더니 100% 이상없는 재생...
    DSLR용 큰 JPG파일도 사진 재생하면 프로그램이 꺼져버리는 현상이 있는데, 아무래도 정상적인 처리 가능 해상도가 따로 있는 하드웨어인거 같습니다.
    여러모로 불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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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aton
      2007.08.12 00:07

      저보단 좋은 PMP를 쓰시고 계시군요. ^^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사실 그런거 따지면서 PMP에서 동영상을 보기 위해 멀쩡한 동영상을 재인코딩 해야 하는 상황이 저로선 상당히 귀찮더라구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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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8.11 22:55

    전 그래도 재수가 좋았는지
    그간 구입한 제품들은 대부분 잘 작동해주었더랬죠.

    산뒤에 정말 짜증났던 제품은 없었던듯 합니다.

    특히 애플 아이맥이나 맥북들은
    고장한번 없고 언제나 만족스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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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aton
      2007.08.12 00:09

      엇? 그러십니까? 맥OS 다운증상 한 번도 안 겪어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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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8.11 23:29

    LG가 아닌 금성 시절의 가스렌지입니다. 고장이 안 나 계속 쓰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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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aton
      2007.08.12 00:13

      가스렌지가 보통 오래되면 점화부가 노화되서 별도의 점화기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늑돌이님댁 가스렌지는 아직 쌩쌩한가 보네요? ^^
      역시 속 안썩이고 오래오래 쓸 수 있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 최신 미사일들이 486급 CPU를 쓰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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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8.12 02:28

    음 아이스테이션은 어딜가나 말이 많은 제품이죠
    AS 센터도 줄이고 내방이나 택배로 한다하는데 흠...
    PMP는 요즘 코원제품이 제일 맘에 들더군요

    전 98년도 15인치 삼성 샘트론 모니터를 근래까지 서브모니터로 사용했었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오래사용하는 편인데 (하루 10시간이상)
    10년이 가까워지도록 고장한번 안나고 잘 버텨주니 말이죠
    그런데 15인치의 사이즈와 어두워지는현상 ( 그렇게 쓰고도 초기밝기 유지되면 최강의 제품인거죠^^ )
    그래서 17인치 CRT 엎어와 듀얼로 쓰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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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aton
      2007.08.12 13:42

      98년도에도 15인치면 정말 막차였을텐데 오래 쓰셨네요. 당시엔 한창 평면브라운관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죠. 말씀하신 CRT의 좁아지고 어두워지는 현상도 고질적인 문제인데 그나마 오랫동안 유지가 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저는 3년만에 아예 가운데 밝은 점으로 승화된 CRT를 써 본 적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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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8.12 11:14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정말 제가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들은 10여년 전에 비해 고장이 잦은 것 같아요. 스마트폰도 1개월에 2~3번은 리셋을 해줘야 하고, 컴퓨터는 가끔 이상 증상이 발생하죠. 네비게이션, PMP, MP3P 등도 동작 중에 에러가 발생하거나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 성능과 기능 때문에 참고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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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8.12 12:17

    저도 PDA, PMP, 스마트폰에 관심이 없을 사람이 아닌데도 써본 결과 만족감을 주는 놈들이 없다보니 결국은 예쁜 책상 달력과 수첩, 위클리 스케쥴러 같은 아날로그 도구들을 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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