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이 좋은 최신 CPU는 비싸고,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 CPU는 가격이 싸진다. 이건 상식입니다. 적어도 단종이 되어 시장에서 씨가 마르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신형 CPU가 나오면 구형 CPU는 가격이 저렴해지게 됩니다. 아니면 아예 신형 CPU는 비싸게 나와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든 신모델은 시장을 차별화한다'는 마케팅과 영업에서는 기본적인 판매 전략인 만큼 이런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속도와 성능이 더 뛰어난 신모델이 구형 모델보다 훨씬 저렴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군다나 그 구형 모델은 시장에서 단종이 된 것도 아닙니다. 보통은 있기 어려운 일인데, 실제 CPU 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제국' 인텔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찌된 노릇인지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장의 반항아(?)는 인텔이 새롭게 내놓은 코어2 듀오 E6550/6750/6850 등 E6x50 시리즈입니다. 이들은 종전 6x00 시리즈에서 시스템 버스 속도를 1,333MHz로 끌어 올리고, 일명 '라그란데(LaGrande)'로 불리던 보안 기술, 인텔 공인 실행 기술(Trusted Execution Technology, TXT)를 더한 것입니다.

인텔 TXT가 나온 김에 잠시 오프토픽으로 넘어가면, 인텔 라그란데는 인텔의 '묵은지'나 다름 없는 기술입니다. 인텔이 2001~2002년부터 최신 기술이라고 꺼내든 것이 라그란데와 밴더풀(Vanderpool)인데, 이 두 기술은 다음 해라도 바로 공개할 수 있을 것 처럼 광고했으나, 실제로 나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밴더풀은 '인텔 VM'이라는 이름으로 펜티엄 D 900 시리즈에 처음 들어갔고, 라그란데는 이번에 모습을 보였으니 최소 4년 동안 묵혀둔(?) 셈이 됩니다. 묵은지는 잘 묵혀두면 맛이 나지만, 기술은 묵혀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데 이번 기술들은 너무나 묵혀 발효가 아닌 부패(?)가 된게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적어도 발표 당시만큼 반응을 끌 수는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 가 보겠습니다. 코어2 듀오 E6x50은 적어도 기술면에서 종전 E6x00 시리즈와 같거나 오히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종전 인텔의 방법 대로라면 이 새 모델은 더 비싼 가격에 나오거나, 종전 모델과 같은 값에 나오되 구 모델 값을 내려 차별화하는 방법을 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들 CPU의 가격을 보면 적어도 과거의 모습과는 꽤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7월 12일

E6320 - 172,600원
E6420 - 202,000원
E6600 - 227,000원

E6550 - 211,000원
E6750 - 249,600원
E6850 - 304,700원
7월 31일

E6320 - 169,580원
E6420 - 189,500원
E6600 - 228,800원

E6550 - 176,800원
E6750 - 199,000원
E6850 - 298,400원
7월 12일은 코어2 듀오 E6x50이 입고된 지 사흘이 지났을 때입니다. 이 때만 해도 종전 모델과 신형 제품들은 '속도 만큼의 가격 차이'를 보였습니다. E6550이 시스템 버스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2.33GHz, E6600이 2.4GHz인 만큼 1만원 정도 E6600이 비싸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 20일만에 E6x50 시리즈의 가격은 곤두박질쳐, 지금은 2.66GHz짜리 E6750이 오히려 E6600보다 저렴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단 3주만에 E6550과 E6750은 약 4만원 이상 값이 떨어졌으니 보통 폭락(?)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CPU의 가격은 내리고, 구 모델은 더 이상 가격 인하가 이뤄지지 않아 가격이 역전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출시 한 달 만에 이렇게 가격이 폭락하는 일은 꽤 드문 현상입니다.

인텔이 7월 22일에 프로세서 가격을 인하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것은 E6x50 시리즈 가격에 영향을 주는 사항은 아닙니다. E6x50은 가격 변동과 함께 새롭게 나온 모델인 만큼 가격이 인하되는 제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격 역전이 단기간에 일어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가격이 제자리를 찾은 것에 불과할 뿐'

달랑 이 한 마디만 써 놓으면 바로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프로세싱 능력을 지닌 분이 그리 많지 않을듯 하여 부연 설명을 합니다.(이해하는 사람이 더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7월 22일의 프로세서 가격 인하 내용과 그 가격을 봐야 합니다. 이번 가격 조정 및 신규 모델 출시가 이뤄진 제품은 이렇습니다.

코어2 익스트림 QX6850 - 999$ *
코어2 쿼드 Q6700 - 530$ *
코어2 쿼드 Q6600 - 266$ (50%)
코어2 듀오 E6850 - 266$ *
코어2 듀오 E6750 - 183$ *
코어2 듀오 E6550 - 163$ *
코어2 듀오 E6540 - 163$ *
코어2 듀오 E4500 - 133$ *
코어2 듀오 E4400 - 113$ (15%)

* 표기는 새로 나온 모델, 괄호 안은 인하율
결과만 보면 가격이 내린 것은 코어2 쿼드 Q6600과 코어2 듀오 E4400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가격 인하 효과를 본 것은 코어2 듀오 E4400 뿐입니다. 코어2 쿼드 Q6600은 50%라는 상당한 가격 인하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것'일 뿐 우리나라는 이미 리베이트나 다른 형식으로서 가격을 몇 달 전부터 이 정도 수준까지 내려서 판매했습니다. 현재 일반적인 판매 가격인 28만원 수준으로서 팔린지 오래 된 만큼 말만 가격 인하일 뿐 사실상 효과는 없습니다. E4400은 20일을 전후해 가격이 2만원 내렸으니 효과를 본 셈입니다만.

그렇다면 새롭게 나온 모델들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요? 현재 기준 환율이 917원이니까 920원으로 가정해 계산해보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결과는 보기 편하게 '대충' 반올림 합니다.)

코어2 익스트림 QX6850 - 92만원
코어2 쿼드 Q6700 - 48만8천원
코어2 듀오 E6850 - 24만5천원
코어2 듀오 E6750 - 17만원
코어2 듀오 E6550 - 15만원
코어2 듀오 E4500 - 12만3천원
이론적으로야 이렇지만 인텔의 공식 가격은 1,000개 단위로 주문할 때의 도매 가격인 만큼 여기에 운송비, 관세, 국내 유통 비용을 계산해야 합니다. 일단 국내 유통 마진을 수입사, 중간 유통상, 소매상을 합쳐 10% 정도로 가정하고 적정한 운송비용, 관세, 창고 비용을 생각하면 현재 시중에 판매중인 가격과 거의 일치합니다. 결국 처음 우리나라에 선보였을 때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고, 빠르게 정상을 되찾았다는 말이 정답입니다.

코어2 듀오 E6x00 시리즈와 가격이 역전된 것도 위의 표가 답해주는데, E6x00 시리즈의 가격은 이번에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인텔은 신모델이 나오면 구모델 가격을 조금이나마 조정하지만, 조정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바로 내부적으로 단종을 계획했을 때입니다. 인텔에서 단종을 결정해도 실제로 최종 주문을 받는 데 까지 몇 달은 더 걸리고, 다시 그 제품이 시장에서 소화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길게 잡으면 1년은 걸립니다. 지금 시장에서 E6x00이 잘 팔리고 물건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가진 않을 것이며, 우리나라의 공식 유통사들도 E6x00의 수입 물량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할 것이 분명한 만큼 곧 이들 CPU는 재고 불안정을 거쳐 시장에서 서서히 퇴출 단계를 밟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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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rnoface
    2007.07.30 23:36 신고

    저번 주에 인하된 가격으로 콘로 E6750 + 하이닉스 DDR2 PC6400 블랙 에디션 + GeForce 8800GTS(오버클럭된 버전)을 구입해서 쓰고 있는데 지출은 좀 컸지만 성능은 정말 발군인 것 같습니다. P35 칩셋과 위 CPU/메모리 조합으로 20~30% 정도 오버클럭하는 것은 일도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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