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15년 가까이 소니의 팬이었다. 1946년 창업 이래로 테이프 레코더나 트랜지스터 라디오 같은 초기 제품들을 내놓던 도쿄통신공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도, 첫 눈에 반해버린 생애 첫 워크맨 이후로 소니를 향한 애정은 변함 없었다. 


애플에 밀리고 삼성에 치여 “소니는 이제 가망 없어”라는 진단이 대세가 된 지금도, “애플처럼 뭔가 신선한 제품 만드는 회사는 그래도 소니 뿐"이라며 지지한다. 실제로 스마트폰, 노트북, 타블릿, 심지어 TV까지도 로고만 바꾸면 뭐가 어디 제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획일화된 시장에서, 적어도 소니 제품엔 소니스러운 아이덴티티가 분명히 존재한다. 비록 그게 패착으로 귀결될지라도 그렇게 시도하는 것 자체로 이미 다른 카피캣들과는 다른 성격의 플레이어로 평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PSP의 후속기, 무려 NGP(Next Generation Portable)라 불렀던 PS VITA는 근래에 본 소니 제품들 중 가장 실망스런 제품이다. 그 전까지의 최대 망작은 아마도 ‘PSP go’나 ‘타블릿 P’ 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애초에 기대라도 안 했지. PS VITA는 공식적인 PSP 2라며 1년 반 가량 기대를 모았던 탓에 그만큼 실망감도 컸다.



훌륭한 OLED 디스플레이와 사운드


본격적인 비판에 앞서 우선 장점 몇 가지를 칭찬하고 넘어갔으면 한다. 우선 5인치, 960x544(16:9), 1,600만 컬러의 OLED 탑재와 그에 따라 적절히 커진 제품 사이즈를 칭찬하고 싶다. 삼성의 갤럭시 노트가 시장에서 히트하는 현상에서 볼 수 있듯, 터치 인터페이스를 장착한 휴대기에 적당히 큰 화면은 분명 매력적이고 트랜디한 면이 있다. 다만 그 ‘적당히'를 맞추는 건 결코 쉽지 않은데, PS VITA는 5인치 디스플레이를 담아내는 것을 전제로 가장 최적화된 게임기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선을 잘지켰다.



게다가 탑재된 OLED의 말그대로 '자체발광' 디스플레이는 게임, 영화 컨텐츠를 즐기기에 과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기존 PSP보다 4배 조밀해진 해상도도 주목할만 하다. 기본적으로 아이폰4와 뉴 아이패드에서 느꼈던 감동 요소가 PS VITA에도 담겨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감동을 지저분하고 엉성한 GUI가 망쳐먹은 게 문제지만, 게임과 영화 컨텐츠에선 분명 도드라진 매력을 뽐낸다.


제품 전면 좌우 끝에 위치한 스테레오 스피커도 훌륭하다. 이어폰으로 듣지 않고 일부러 스피커를 이용하고 싶어질 정도로 적당한 깊이와 음장감이 전달된다. 소니가 기본적으로 좋은 출력기를 다양하게 만드는 회사이기도 하지만, 아이패드처럼 스피커가 뒤를 향하지 않고 사용자를 향하고 있는 면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어색하고 불편한 PS VITA


그럼 이제 단점들을 짚어보자. 우선 커진데다 멀티터치까지 가능한 터치스크린을 탑재하다보니 기존의 XMB를 버리고 새로운 GUI를 채택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너무나 어색하다. 제품 전원을 켜고 잠금 상태를 풀기 위해 우측 상단 모서리를 끌어 넘겨보면, 높아진 해상도에 어울리지 않게 자글자글 튀는 외곽선 픽셀들이 사용자를 반긴다. 두리둥실 떠 있는 아이콘들이 움직일 때마다, 화면 전환효과가 표현될 때마다 이럴 거면 뭐하러 해상도를 올렸나 싶을 정도로 눈에 거슬린다.



게다가 이 GUI는 화면 양 옆의 패드와 버튼들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터치 입력으로만 조작할 수 있는데, 너무 과감하게 디테일을 생략한 게 아닌가 싶다. 터치가 일반적으로 편한 입력 방식인 건 맞지만, 게임기를 양손으로 쥐고 있는 상태에서 스틱과 하드키만으로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 반드시 화면을 터치해야하는 건 은근히 불편하고 무성의하다. 일일이 포커스와 키 매핑을 하기 귀찮았다면 그냥 SELECT / START 버튼 만이라도 매핑하든지,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놀리는 것보단 일단 히든 마우스 포인터라도 넣는 게 좋지 않았을까.


커진 화면을 가로로만 써야하는 기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화면 꽉차게 늘려 놓은 가상 키보드도 문제다. 트위터, 페이스북 앱에서 ‘G’, ‘H’와 같은 키보드 중앙 키를 양손 엄지로 누르려면 꽤 더디고 불편하다. 아이패드처럼 좌우로 갈라진 키보드를 옵션으로 제공하는 건 지나친 바람인가. 또 휴먼옛체를 보듯 넓적하고 둥근 한글 폰트는 이 첨단 기기와 참 안 어울리지만, 소니가 추가 한글 폰트를 제공할리 만무하니 차라리 빨리 포기하고 익숙해지는 게 좋다.



한편 획기적인 입력 방식으로 기대를 모았던 후면패드는 아직 계륵에 다름 아니다. 후면패드를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적절히 활용한 게임은 아직 없고, 다들 뭔가 써먹긴 해야할 거 같아서 억지로 넣어놓은 느낌이다. VITA의 그립감은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후면 패드까지 감싸쥐는 형태가 되었을 때 가장 편한데, 후면패드로 슈팅 포인트를 입력하게 만들어 놓은 <FIFA 12>처럼 그냥 감싸쥔 것만으로 오동작을 일으키는 어이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FIFA 12>에는 이 때문에 후면패드입력을 끄는 옵션이 제공된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언차티드>의 밧줄 타는 액션도 억지스럽고, 아무튼 기대했던 후면 터치패드는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엑스칼리버처럼 봉인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후 VITA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기능인 AR(증강현실)을 응용한 게임들이 나오면 그 때 비로소 후면패드와 6축 센서 등이 맞물려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메모리카드, 왜 또 독자 규격인가


PS VITA의 핵심 부품들은 ARM Cortex, Imagination PowerVR 등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SGX543MP4+ 쿼드코어 GPU는 지난 번 뉴 아이패드 리뷰에서도 다뤘듯이 동일한 제원이다.



하지만 저장매체는 또다시 소니만의 독자 규격을 만들어 탑재했다. 게다가 이번엔 위 아래로 두 개씩이나! 위로는 기존의 UMD를 대체하는 PS VITA 카드가, 아래로는 메모리스틱 듀오를 대신하는 PS VITA 메모리카드가 꽂힌다. PS VITA 카드는 내용을 바꿀 수 없는 게임 카트리지고(일부 영역을 세이브 데이터 저장 등에 사용 가능), PS VITA 메모리카드는 PSN을 통해 내려받은 게임을 저장하거나 사진, 동영상, 각종 설정 값들을 저장하는 매체다. 


VITA 카드야 물리적인 크기가 작아서 그렇지 게임타이틀이라고 생각하면 기존처럼 편당 4-5만원에 판매되니 비싸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메모리카드는 독자 규격의 폐해가 너무 크다. 최저 용량인 4GB가 2만 8천원으로, 범용 SD카드로 치면 32GB 가격이다. PSN을 통해 게임 하나 다운 받으면 <모탈컴뱃> 같은 경우는 이미 3GB 씩이나 차지하니 4GB로는 턱 없이 모자르다. 지워가며 쓰거나 더 큰 메모리카드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PS VITA의 메모리카드는 전원이 켜진 상태에서 뽑으면 당연하단듯이 시스템이 리부팅되어 버린다. PSP에서 메모리스틱을 사용하던 경험과는 너무도 달라 당황스럽다. 디카와 닮았다고 볼래도 끄고 켜는 시간이 이렇게 긴데... 또 메모리카드가 없으면 어떤 게임이나 앱도 동작하지 않는다. 새로운 메모리카드가 속도나 보안 등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불편과 가격차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또 다시 부정적인 소니스타일의 사례로 지적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디테일, 정말 소니 제품 맞나?


10년을 앞선 제품을 만든다던 소니(정확히는 SCE)지만, 사실 몇몇 주요사양을 제외한 PS VITA의 부가기능들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카메라는 전후방 모두 30만 화소로, 640x480 해상도에서 60fps가 간신히 나오는 수준이다. 기록은 커녕 인터넷 공유 목적의 촬영도 기준 미달이고, NDSi 처럼 게임이나 화상통화에 응용하기 위한 말그대로 부가기능인 셈이다.



한편 PSP에 기껏 추가했던 영상 외부출력이 VITA에서 삭제되고, PS3 와의 연계도 당장은 전용 USB 케이블을 사용해야 하는 등 불편하게 제한된 점도 뭔가 만들다 말고 건너 뛴 느낌이다. 특히 충전포트를 겸하는 본체 하단 포트는 케이블을 반대로 꽂아도 들어가지만 실제 충전은 이뤄지지 않아 황당하다. 보통은 거꾸로 꽂을 수 없도록 단자 형태를 다듬든가(어댑터쪽은 이렇게 돼있다), 아예 거꾸로 꽂아도 동작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 이런 기본을 안 지키고 쓸데 없이 디테일하게 표현되어 있는 화면 상단의 충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뭔가 안타깝다. 제발, 소니여.


가장 중요한 배터리 사용시간은 이렇게 이것저것 디테일과 부가기능을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3~5시간에 그칠 뿐이다. <언차티드>를 집중해서 플레이하다 보면 챕터2~3에서 벌써 배터리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 정말 집에선 PS3를, 이동시엔 PS VITA를 사용하는 컨셉이 맞긴 한가보다.



가격 인하 기다리고, 타이틀 잘 살펴야


PS VITA 기본팩의 한국 정발 가격은 36만 8천원이다. 메모리카드가 없으면 그저 넓적한 시계일 뿐이니, 메모리카드까지 구입하면 기본 40만원이다. 거치형인 PS3의 2인 패키지보다 비싼 가격이다. 태생이 휴대용 게임기이고, 더 좋은 사양을 갖춰 나온 최신 제품이니 필요한 사람만 사면 되겠지만, 꼭 밖에서 게임을 해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장은 PS3를 구입하는 쪽이 훨씬 쾌적하고 재미가 보장됨을 부인할 수 없다. 일단 검증된 타이틀이 많으니까.


또 초기에 비교적 많은 타이틀이 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PS VITA 하면 떠오르는 게임은 그나마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모탈컴뱃>, <BBEX> 같은 일부 게임들을 짚어낼 수 있는 상황이다. 새 콘솔 나올 때마다 따라 나오는 레이싱 게임이나 골프는 지겹고, <FIFA 12> 같은 멀티 플랫폼 시리즈나 기껏 <루미네스> 하려고 PS VITA를 사는 건 오버 같다. <언차티드> 광팬이라면 모를까.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현재 일본에서는 PS VITA Wi-Fi 버전이 정가보다 3,000엔 정도 저렴한 22,000엔 가량에 판매되고 있으며, Wi-Fi/3G 모델은 25,000엔에 판매 중이다. 공식적인 가격 인하는 없었지만, 쌓인 재고로 인해 시장 가격이 자연스럽게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이 가격 그대로 환율을 적용해보면, 한국 정발판의 판매 가격도 약 5만원 정도는 내려갈 여지가 있어 보인다. 즉, 36만 8천원보다는 29만 9천원 쯤이 그래도 합리적인 PS VITA 가격이 아닐까 싶고, 조만간 닌텐도 3DS처럼 공식적인 가격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도 기대해 볼만 하다.


가격 조정과 더불어 <메탈기어솔리드>, <슈퍼로봇대전> 차기작이나, 적어도 <리틀 빅 플래닛> 쯤은 나와야 PS VITA를 구입할 적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재고가 쌓여 망삘을 한껏 내뿜던 3DS도 <슈퍼마리오 3D랜드>와 <몬스터헌터 3G> 등 인기 컨텐츠 발매에 힘입어 1년 새 1,700만대 넘게 팔렸으니, 이제 180만대 팔았다는 PS VITA도 대표작들이 좀 더 보강돼야 비로소 성패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 컨텐츠는 스마트가젯에서 edged(에지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은 edged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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