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짓의 세상에서 남들이 '갑'이라고 하면 '을'이라고 하는 성격 고약한 dolf, 이번에도 시대에 역행하는 지름을 했습니다. 바로 MID(Mobile Internet Device, 휴대용 인터넷 기기)입니다. 코원에서 만든 W2 SSD라는 기기인데, 작년 모델이며 지금은 단종되기는 했지만, 새 제품일 때는 50만원대에 팔리던 것입니다. PMP만한 크기에 인텔 아톰 Z 시리즈 프로세서를 넣고, 윈도우 7까지 넣어버린 기계입니다. 윈도우 7이 돌아가는 PC인 만큼 태블릿 만능 시대가 된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줘도 신기해하는 물건입니다.

이미 다들 아시다시피, 2010년 초만 해도 '이제는 태블릿 PC와 MID의 시대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18개월이 지난 지금, 이 말은 헛소리가 되었습니다.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의 시대다' 또는 '스마트폰 기반의 패드의 시대다'라는 말이 더 맞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태블릿 PC도, MID도 주역이 아니며, 한 때 MID를 만들던 곳들도 대부분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입니다. 마이너 노선을 걷는 dolf는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이 MID나 태블릿 PC가 아닌 스마트폰에서 진화한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의 손을 들어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태블릿 PC와 MID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몰락한 것일까요? 개짓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그 이유는 대부분 아시겠지만, 'Dying Young'을 기리는 마음으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MID의 사망 원인(?)을 따져보고자 합니다.

■ x86은 태블릿에 그리 적합한 넘이 아니다

x86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이런 넘들이 모르는 곳에 우글거릴 정도로 말이죠.

PC와 맥에 쓰이는 x86 프로세서, 하지만 이 아키텍처 CPU를 꼭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PC에만 쓰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PC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x86 아키텍처는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기업의 POS나 금융권 ATM같은 단말기에는 x86 프로세서 기반의 산업용 컴퓨터가 쓰입니다. 사실 이것도 PC 기반이라고 우기면 우길 수 있습니다만, 인텔의 80186같은 구세대 프로세서는 지금 세상에 맞춰 최적화를 거친 뒤 산업용 로봇이나 밀링머신 등 산업용 기계, 기타 여러 컨트롤러에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구세대 아키텍처를 통합하기 위해 아톰 아키텍처(정확히는 본넬 아키텍처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만)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그 역시 결국 x86의 하나의 갈래일 뿐입니다. 이처럼 x86 아키텍처 그 자체는 적어도 PC라는 영역에만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 넘에게도 죄는 있습니다.

그러면 x86이 태블릿에 맞지 않는 것은 운영체제의 문제일까요? 그것도 하나의 문제일 수는 있습니다. 윈도우 7이라는 최신형 빌형기업의 운영체제는 나름대로 태블릿 PC 환경에 맞춰 아이콘 설계를 하고 멀티 터치를 비롯한 최신 기술을 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태블릿/패드용 주류 운영체제인 애플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에 비해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전히 윈도우라는 운영체제는 키보드와 마우스 없이는 쓰기 꽤 불편한 운영체제입니다. 실제로 dolf가 영입한 W2라는 MID 역시 터치 스크린과 가상 키보드 환경을 쓰지만, 이것으로 뭔가 제대로 입력을 하고 제어를 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합니다. 시원하지 않은 아이콘, 복잡하고 빠르게, 정확히 제어하기 어려운 환경 설정 등 빠르게, 정확히, 한 번에 하길 원하는 패드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합니다. 차세대 운영체제인 가칭 윈도우 8에서는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아직 베타 버전조차 없는 미래의 운영체제의 모습을 멋대로 상상하는 것은 그리 영양가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x86 = 윈도우' 그 자체는 결코 아닙니다. 애플의 iOS는 그렇다 쳐도, 안드로이드는 x86 프로세서를 쓴 컴퓨터에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Android-x86같은 프로젝트도 있어, 지금의 MID나 태블릿 PC에 충분히 설치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라는 것이 리눅스 커널을 바탕으로 그 위에 Dalvik이라는 가상 머신(VM)을 올려 실행하는 것인 만큼(기술 이전 문제로 구글과 리눅스 진영의 사이가 매우 좋지 못한 것은 일단 넘어갑니다.) 가상 머신만 x86 버전으로 나오면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구글은 PC 기반으로는 구글북이라는 크롬OS 기반 기기를 밀고 있기는 하나, 안드로이드 역시 쓰자고 하면 얼마든지 x86 태블릿/패드에 넣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픽카드 분야에서는 전력 소비량을 무시한다고 욕을 먹어도,
x86과 비교하면 테그라 시리즈는 새발의 피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x86 프로세서가 태블릿이나 패드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뜨겁고 전기를 많이 먹기 때문입니다. 안드로이드 3.0, 즉 허니컴 운영체제는 지금의 대형 안드로이드 패드의 주력 운영체제입니다. 여기에 주로 쓰이는(사실상 독점인) 엔비디아 테그라2 프로세서. 엔비디아는 상대적으로 '불타는 반도체'를 만든다고 악명이 높지만, 이 테그라2의 열 설계 전력(TDP)는 얼마나 되는지 아는 분이 계신지요? 0.2W정도 됩니다. 2W도 아니고 0.2W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아톰 Z 시리즈 프로세서는 얼마나 먹을까요? 제가 쓰는 W2에 들어가는 아톰 Z520 프로세서가 2W입니다. 속도를 800MHz까지 낮춘 대신 전력 소비량을 있는대로 줄인 Z500조차 0.6W입니다. 이것도 순수한 프로세서의 TDP일 뿐 칩셋(인텔 SCH) 역시 2W 이상의 TDP를 갖는 점을 생각하면 그 차이는 매우 커집니다. 비록 조금 세대 차이가 있기는 하나 ARM 아키텍처를 쓴 1GHz급 듀얼코어와 1.33GHz급 x86 싱글코어 프로세서의 전력 소비량 차이가 많게는 20배까지 나는 셈입니다.

기껏해야 4W라구요? 사실 기껏해도 4W는 맞습니다. 하지만 휴대용 기기의 4W는 무시하지 못할 차이를 가져옵니다. 더 큰 배터리를 넣어야 하기에 기기가 커지는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요즘의 패드류는 넓기는 해도 두께는 얇은데, x86 아키텍처 프로세서를 넣으면 배터리때문이라도 이러한 두께는 일단 작별 인사를 해야 합니다. 또한 4W의 발열 차이는 장치 전체의 설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훨씬 복잡한 열 설계를 해야 하는 만큼 부품은 더 많이 들기에 배터리를 뺀 두께도 얇아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쉽게 뜨거워져 기분이 나빠지는 장치를 좋아하기는 어렵습니다.

인텔의 신형 아톰 프로세서, Z600 시리즈는 칩셋까지 통합하여 전력 소비량을 줄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4W대 초반에서 2W대 초중반으로 줄인 것에 불과합니다. 전력 소비량은 작동 속도와 전압을 높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무작정 작동 속도와 전압을 낮춘다고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ARM 아키텍처에 비해    x86이 성능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들 이렇게 전력 소비량과 발열 차이가 나서는 얇은 휴대 기기에 x86 프로세서를 쓰는 것은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더 얇고 가볍고 시원한 장치를 원하는데 여전히 두껍고 뜨거운 것을 벗어나지 못한 x86 기반 UMPC와 MID가 몰락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 패드 曰, '비즈니스? 그거 먹는건가요?'

x86 기반 UMPC와 MID가 ARM 기반 패드류에 완전히 밀린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이러한 패드류 기기를 쓰는 목적이 '엔터테인먼트'로 맞춰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아이패드, 갤럭시탭을 쓸 때 어떠한 앱을 다운로드하며 쓰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정을 관리하고 영화와 음악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네비게이션이 되기도 하며 게임기 역할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패드가 워드프로세서가 되고 스프레드시크의 매크로를 돌리며 PC에 준하는 수준의 프리젠테이션 편집 목적으로 쓰이는지요? 대부분 'No~'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패드류로 하는 작업은 대부분 비즈니스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가깝습니다. 비즈니스와 가까운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종전에 PDA나 휴대전화가 하던 PIMS의 영역에 불과합니다. 일정을 관리하거나 간단한 메일을 작성하고 읽어보며 메모를 남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직 이러한 패드를 노트북 PC를 충분히 대체할 정도의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프리젠테이션, 전자출판, 그래프 작성용으로 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PDF를 비롯한 비즈니스 목적의 전자서적이나 프리젠테이션 파일의 실행이 좋아진 최신형 패드의 성능을 바탕으로 조금씩 주목을 받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 작업은 마땅한 iOS 또는 안드로이드용 앱도 없을 뿐더라, 사람들도 이러한 작업은 '노트북 PC나 데스크탑 PC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PMP나 MP3 플레이어, 미니 노트북 PC같은 다양한 장치들이 하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이제는 얇고 가벼우며 범용성도 좋아진 패드 제품들이 해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훨씬 더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러한 기기는 비즈니스 분야라는 'PC만의 분야'를 침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PC를 장악하고 있는 프로세서가 x86인 이상 이는 ARM 기반의 패드가 x86을 몰아내지 못하는 분야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찌보면 여기에 x86 프로세서 기반 MID나 태블릿의 살 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비즈니스 분야의 강점을 살려라,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x86 기반 태블릿이나 MID의 장점은 PC용 운영체제를 그대로 쓸 수 있고, 그와 함께 이미 너무나 잘 꾸며진 비즈니스 어플리케이션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빌형기업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좋을 MS Office까지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픈 소스에 긍정적인 사람조차 '공짜라서 쓸 뿐 좋지는 않다'는 평가를 하는 OpenOffice 또는 LibreOffice만 되어도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iOS 및 안드로이드용 오피스 앱보다 강합니다.

물론 앞에서도 적은 바와 같이 윈도우나 리눅스 그 자체는 iOS나 안드로이드보다 태블릿이나 패드용으로는 좋은 운영체제는 아닙니다. 반응 속도는 느리며 쓰기는 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어플리케이션이나마 이러한 목적에 맞게 UX를 개선해준다면 비즈니스 태블릿이라는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는 시장을 x86 아키텍처 프로세서가 노려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 사무는 물론이며 물류, 의료, 출판, 교육 등 '진짜 돈 되는' 분야를 거머쥘 수 있는 숨은 강자가 될 기회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iOS나 안드로이드 패드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손가락을 빨며 지켜보는 빌형기업조차 최신 버전 MS Office는 여전히 태블릿에 불편한 어플리케이션입니다. 또한 다른 비즈니스 어플리케이션 개발사는 x86 태블릿의 가능성에 거는 대신 이미 충분한 돈벌이가 되는 데스크탑 또는 노트북 PC 스타일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습니다. x86이라는 환경이 갖는 유일한 장점을 살려줘야 할 어플리케이션 개발사들이 무관심하기에 x86 아키텍처는 여전히 PC나 보이지 않는 뒷골목(임베디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ARM 기반 기기들을 바라볼 뿐입니다.

전기는 많이 먹고 뜨거우며 얇게 만들기도 어려운 하드웨어 환경, 쓰기도 편하지 않은 운영체제 환경, 거기에 더해 유일한 장점이라고 해도 좋을 비즈니스 분야에서 어플리케이션 개발사들의 무관심까지... 2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동안 x86 기반 태블릿과 MID는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현실은 더 어둡습니다. 일명 윈도우 8으로 불리는 차세대 빌형기업 운영체제가 보여주듯이 'x86이 나아지길 기대하느니 차라리 ARM으로 가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인텔조차 ARM 라이선스를 다시 받아 이러한 소형 기기용 프로세서를 다시 만들 것이라는 루머에 시달릴 정도로 소형 기기에 x86 아키텍처 프로세서는 신용을 잃었습니다.

2010년을 빛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x86 기반 태블릿과 MID는 2년도 되지 않아 응급실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를 둘러싼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젓고,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서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dolf는 그의 곁에서 이렇게 장송곡을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이렇게 차갑게 외면받지 말길 바라며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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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28 12:56 신고

    오리가미, MID란 말들이 업계에서 화두일 때 이런저런 기기들이 많이도 나왔지만, 솔직히 마음에 들었던 기기는 하나도 없었던 거 같네요. 하나같이 벽돌 같이 무겁고 지저분한 키보드가 달린 과도기적 기기들. 게다가 스타일러스 펜까지 어딘가에 꽂혀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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