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9/11 사건을 생중계하던 TV 뉴스를 보며 이유 모를 공포와 전율을 느꼈던 저이지만 그 이후에는 큰 사건이 터졌다는 뉴스를 봐도 그다지 실감이 나질 않더군요. 그러나 지진과 쯔나미, 그리고 원전 사태를 겪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을 보며 다시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매일 관련 뉴스를 찾아 보게 되었고 결국 일본 바로 옆에 있는 만큼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솔직히 기분 나쁜 사실도 생각하게 되었고요. 이처럼 세계의 멸망이란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괴롭게,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본디 좀 심각한 설정의 영화나 게임을 좋아하는 탓인지 그간 즐겼던 게임, 특히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FPS를 곰곰히 되씹어 보니 디스토피아(distopia)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더군요. 디스토피아란 사실 별 것 아닙니다. 블레이드 러너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카우보이 비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울한 미래, 즉 어두운 면이 굉장히 강조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창조된 가상의 세계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게임에서의 대표적인 설정은 핵전쟁 이후의 세계입니다만, 그 외에 망가져 버린 해저 유토피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 특이한 놈들도 있지요. 여기서는 이런 게임들 중 Fallout, Bioshock, Stalker 이렇게 세 가지 시리즈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1. Fallout 3 / Fallout: New Vegas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RPG인 Fallout 1과 2를 정말 재밌게 즐겼던 골수 팬들은 Elder Scrolls 시리즈로 유명한 Bethesda Softworks에서 Fallout 3를 내놓았을 때 뒤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속편이 다시 등장하면서 3D로 변한 것은 좋지만 왜 하필 Oblivion 확장팩 느낌이 나게 만들었냐는 평가도 있었고 리암 니슨, 론 펄맨 등 유명 헐리웃 배우들이 성우로 참여한 점에 높은 점수를 준 사람도 있었지요.

 


어쨌든 Fallout 시리즈가 꽤 할 만한 RPG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Fallout 3와 New Vegas는 모두 RPG의 핵심인 모험 거리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메인 퀘스트만 후딱 해치운다면 별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색다른 NPC, 풍성하고 재미있는 대화, 엄청나게 넓은 지도, 파벌(faction) 간의 미묘한 긴장 관계 등 플레이어를 쭈욱 빨아들일만한 요소들이 넘쳐납니다.

Fallout 3의 경우 게임이 시작되는 Vault (여기서 리암 니슨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지요)와 메가톤 같은 친숙한 환경을 벗어나면서 점차 게이머가 성장을 하게 되는데요, 다양한 지형과 방사능에 오염된 돌연변이 적들 외에도 여러 무기와 동료 시스템 덕분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RPG의 함정에 빠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RPG에서도 종종 보이는 레벨 노가다는 거의 필요하지 않지요. 그냥 자신이 원하는 순서대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즐기다 보면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니까요.


Fallout 3의 성공에 힘입어 작년에는 Fallout: New Vegas라는, 본편과 전혀 상관 없는 스토리를 가진 신작이 등장했습니다. New Vegas는 Fallout 3보다 개선된 그래픽과 함께 새로운 아이템, 무기/탄약 개조 기능, 보완된 동료 관리 방법 등을 자랑합니다. 사실 저는 이 게임의 기본적인 세팅과 진행 방법이 Fallout 3와 너무도 비슷해서 몇 시간 해 보다가 잊고 지냈는데요, 최근에 다시 시작해서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New Vegas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퀘스트마다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수많은 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Fallout 3에서도 약간 그랬지만 파벌 간의 투쟁도 훨씬 치열하고요. 이런 독특하고 매력적인 구성 덕분에 New Vegas는 'single player RPG = 1번 엔딩 보면 다시 할 일 없는 게임'이라는 공식을 보기 좋게 깨버렸습니다.



이 게임과 관련된 정보를 찾기 위해 해외 몇몇 게임 포럼에 가 보니 총 플레이 시간이 무려 80시간을 넘긴 게이머들이 꽤 많이 보이더군요. MMORPG도 아니고 혼자 하는 RPG의 플레이 시간이 100시간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굉장히 신선합니다. 이처럼 New Vegas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푹 빠져들 수 있도록 제대로 만든 게임입니다.

전작인 Fallout 3가 맛배기였다면 New Vegas는 훨씬 복잡하고 어렵지만 즐거운 숙제를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그냥 커피와 TOP의 차이랄까요;;;) 힘이 약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질서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New California Republic(NCR)의 군인들을 도와야 하나? 아니면 최신 에너지 무기로 무장한 비밀스러운 소수 정예 단체인 Brotherhood of Steel의 일원이 되어 볼까? 그도 싫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카이사르 아래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침략하는 Legion이 될까? 놀랍게도 New Vegas에는 정말 정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주인공의 행동이 모여 평가가 내려지고 그 행동의 결과로 인해 어떤 사건이 또 생겨날지는 직접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만 알 수 있거든요. 실제로 New Vegas에서 주인공이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의 개수는 optional한 것까지 포함하면 수백 개가 넘어갑니다. 지금 제가 관계를 맺고 있는 파벌도 10개는 족히 넘어가고요.


초반이 조금 답답하게 진행되고 특정 무기를 손에 넣으면 veteran 난이도에서도 전투가 갑자기 매우 쉬어진다는 점, 그리고 다소 심각한 버그들이 보인다는 점(메인 퀘스트 진행이 더 이상 안 되더군요;; 결국 다른 스토리 라인을 따라서 가기로 했습니다만...)을 제외하면 New Vegas는 정말 최고의 작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괜찮은 RPG입니다. 제 3.2GHz Core2Duo + GeForce 260GTX  시스템에서도 문제 없이 돌아가고요. 그래서 전 진득~하게 즐길만 한 화끈한 RPG를 찾는 분들께 Fallout 3와 New Vegas를 모두 추천하고 싶습니다. Fallout 3를 안 해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Fallout의 세계관이나 시스템에 적응이 필요한 분들은 Fallout 3이, 처음부터 화끈한 모험을 원하는 분들께는 New Vegas가 제격입니다. (참고로 New Vegas의 메인 스토리는 조금 약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음에는 무너진 디스토피아에서 벌어지는 엄청나게 슬픈 이야기, Bioshock 시리즈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1.07.26 04:44 신고

    잘 설명

    삭제 답글 댓글주소
  2. ㅇㅇ
    2011.10.17 02:47 신고

    실제로 뉴베가스는, 오리지널 1,2편을 개발했던 블랙아일의 멤버들이 창설한,
    옵시디언에서 개발해서 그런지, 오리지널 폴아웃 분위기가 남.

    삭제 답글 댓글주소
  3. pyp
    2011.12.10 09:40 신고

    폴아웃3는 디스토피아 라고하기엔 너무나 많은것이 사라져있고 방사능이 넘쳐나는데다가 물도 정제된게아니면 마실수도없고 그래서 디스토피아 라기보단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많이가까운거 같아요.

    삭제 답글 댓글주소
  4. 2013.05.10 20:20 신고

    # 잘 봤습니당^^ 요새 한글로 다시하고 있네요.. http://f3.vaslor.net

    삭제 답글 댓글주소


FeedC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