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와나 네이버 같은 가격 검색 사이트만 보는 사용자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 개별 컴퓨터 쇼핑몰의 CPU 카테고리를 살펴보면 꽤 많은 제품이 '품절'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텔 또한 문제가 없지 않지만, AMD는 매우 문제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애슬론 64 X2 4000, 4400+같은 보급형 일부 모델의 재고만 안정적이며, 고성능 모델 또는 초 저가 모델의 정품은 품절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들어 온다고 해도 잠시 뿐 다시 품절 상황에 빠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코어2 듀오가 중고가형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펜티엄 DC가 보급형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해도 보급형 또는 준 중가 PC 시장을 오랫동안 지켜온 AMD의 이런 장기적인 재고 부족 문제는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더우기 AMD CPU는 마니아도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 소비자는 길어지고 있는 재고 문제에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어 시장을 회복해야 할 AMD 입장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AMD CPU는 시장에서 사라졌는지, 왜 이렇게 수급 상황이 좋지 않은지 그 뒷 이야기를 잠시 해보고자 합니다.


■ 환율, 그것이 문제로다.

CPU는 '수입품'입니다. 당연히 환율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다만 단순히 수입할 당시의 환율만 따질 수는 없는데, 수입할 당시 환율이 아무리 저렴해도 유통 과정에 꾸준히 환율이 떨어지면 그만큼 기대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수입량이 많아 전 제품을 시장에서 소화해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 오히려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환율이 조금 비싸도 환율이 꾸준히 올라주면 이득이 됩니다. 국내 유통 가격은 올리면 그만이고, 그만큼 많이 받아둘수록 이득이 됩니다.

다만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이 문제입니다. 보통 금리를 올리면 환율은 떨어집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콜금리를 한 번 올린데다, 한두 번 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환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환율은 큰 변동 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CPU 수입 업체들은 환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 때문에 CPU의 수입을 꺼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입을 하더라도 적은 양만 들여오는 만큼 시장에 넉넉한 양을 공급하긴 어렵습니다. 메인보드나 그래픽카드는 어떻게 가격 조정이라도 받을 수 있고 수입량도 엄청나게 많진 않지만, '현금' 그 자체인 CPU는 환율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인텔이나 AMD 모두 겪는 문제지만, 판매량이 매우 많은 인텔은 꾸준히 제품을 들여오고 있어 메인스트림 제품의 재고가 끊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사실상 단종이 될 펜티엄 4, 셀러론 D, 코어2 듀오 E6x00 시리즈는 오랫동안 재고가 없는 상태가 이어지거나 곧 그런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재고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와 달리 AMD는 인텔보다는 수입 업체들이 훨씬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러 가지 시장 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수입 시기와 수량을 결정하는 데 훨씬 복잡한 계산을 하고 신중하게 움직입니다.

■ 뜨거운 감자(?), 디직스세미콘

이미 뉴스에서 나온 바 있지만 7월 들어 인텔과 AMD의 유통사가 서로 바뀌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텔 CPU의 영원한 친구(?)로 여겨지던 SAMT(구 삼테크)가 AMD코리아와 프로세서 유통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실 SAMT는 일반 시장에 제품을 유통하는 것 보다 OEM 시장에 파는 것이 훨씬 많았던 만큼 유통사가 바뀐다고 해서 시장에서 받을 혼란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중견 PC 제조사가 거의 남지 않은 상황에서 OEM에 치중하던 SAMT의 매출도 그만큼 떨어졌으니 새로운 살 길을 찾고자 애쓴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SAMT는 현재 용산전자상가의 중간 판매상 체제를 정비하고 있으며, 빠르면 10일 이후부터 조금씩 SAMT 공식 유통 AMD CPU를 출고할 예정입니다. 다만 초기에는 그 수량이 많지 않아 최소한 앞으로 10일, 길면 한 달 정도는 AMD CPU의 유통 상황이 매우 좋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SAMT의 유통사 지정과 유통망 정비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AMD CPU 유통 사정이 좋지 않은 '현재'와 '결과'에 불과합니다. CPU 재고 파동의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AMD 유통사 가운데 점유율 1위 유통사인 디지털씨앤아이(DCI)의 AMD 유통 포기입니다. 그 사연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DCI는 디유뱅크라는 회사의 자회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DCI가 디유뱅크를 거쳐 코스닥에 우회상장한것인데 법적으로 디유뱅크가 모회사, DCI는 100% 출자 자회사가 됩니다. 그런데 디유뱅크가 디직스세미콘(구 디지웍스, 이후 디직스로 통칭)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디직스(디지웍스)는 요즘 들어 자체 브랜드 수입 메모리나 메모리 관련 제품, 액세서리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 전부터 나름대로 확고한 아이템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그레이마켓 CPU'입니다.

그레이마켓(Gray market)은 일반 시장(Normal Market)이나 암시장(Black Market)과 다른 '비정규 시장'을 말합니다. 장물을 거래하는 블랙마켓은 CPU에서 처음부터 말할 가치가 없으니 넘어갑니다만, 일반 시장과 그레이마켓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일반 시장 제품은 국내 공식 유통사를 거쳐 팔리는 물건을, 그레이마켓 제품은 공식 유통사가 아닌 보따리상이나 중소형 수입사가 외국에서 팔리는 물건을 들여온 것을 말합니다. 그 자체가 '돈'인 CPU는 환율 차이를 노린 그레이마켓 시장이 매우 큽니다. 디직스는 이 그레이마켓 최대 유통사로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텔과 AMD 모두 그레이마켓 박스 및 트레이 제품을 유통하며, 특히 AMD 박스 모델은 자체 스티커까지 붙여 유통할 정도의 기업입니다. 당연히 AMD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인텔 입장에서도 디직스는 눈엣가시인가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디직스는 그레이마켓의 황제일 뿐만 아니라 인텔 정품 CPU의 1차 총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텔 CPU 공식 유통사인 피씨디렉트(PCD)의 제품을 유통하는 중간 역할을 하기도 할 뿐더러, PCD가 단독 총판인 인텔 메인보드의 총판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두 얼굴의 기업'입니다. 디유뱅크가 디직스를 인수한 것은 메모리 관련 제품 유통이 가장 크지만 덤(?)으로 넣은 '그레이마켓'과 '인텔 정품 유통망'도 무시할 수 없는 수확입니다.

AMD 입장에서는 그레이마켓 CPU를 유통해 시장을 흐리며, 덤으로 인텔까지 손을 대는 디직스를 원망할 수 밖에 없고, 디직스를 인수한 디유뱅크, 그리고 DCI와 정상적인 관계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디유뱅크의 디직스 인수 발표 이후 AMD는 DCI의 AMD CPU 총판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일반 시장 유통이 매우 많은 DCI의 AMD 시장 철수는 시장에 바로 영향을 줬고, AMD CPU의 씨가 마른 원인이 되었습니다. SAMT가 DCI의 공백을 바로 채웠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시장을 다시 만드는 데 1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기간은 일반 유통 시장에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태(?)의 결과 디유뱅크는 메모리를 비롯해 인텔, AMD를 모두 손에 거머쥔(인텔은 정품 및 그레이 포함) 막강한 존재로 거듭났고, SAMT는 100%는 아니지만 DCI가 버리고 떠난 AMD CPU 시장을 접수(?)해 시시해진 인텔 OEM 시장을 대신한 성장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른 인텔, AMD 총판은 그리 큰 이득도, 손해도 없겠지만 AMD 프로세서 유통사인 제이씨현시스템과 제이웨이브는 DCI의 시장 철수로 약간의 떡고물(?)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 AMD CPU를 사려는 소비자만 '완전히 새된' 꼴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FeedC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