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우연히 기회가 닿아 당시 Quake III Arena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던 PowerK님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압구정의 한 PC방에서 만나 간단히 얘길 나누고, 직접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요. 해상도는 겨우 800x600, 모든 그래픽 옵션은 최저로 설정해 게임 속 사물들을 단순한 폴리곤 덩어리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키보드도 그냥 남들 다 쓰는 일반 멤브레인 101키였고, 마우스만 조금 고가의 볼 마우스를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PowerK님을 만나고 나니 역시 "선수는 장비를 따지지 않는다"는 명언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제 8년 전 기억을 더듬지 않더라도, 당장 현역 프로게이머들의 장비를 보면 마찬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한 때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끄니 추가 단축키나 매크로 기능을 탑재한 다양한 변종 키보드들이 출시된 바 있지만, 많은 기능에도 불구하고 사장되고 말았죠. 필요 이상의 추가 기능은 오히려 불편만 초래한다는 이야깁니다. 특히 키보드는 일반 101키에서 취향에 따라 기계식, 펜타그래프 등으로 방식만 갈릴 뿐, 완전히 대체한다거나 애드온으로 요긴하게 사용할만한 추가 장비가 나오기 어렵죠.


벨킨 n52te는 기본적으로 그런 한계를 깔고 있는 장비입니다. Razer 특유의 백라이트 키패드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은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헉-!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막상 게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젓게 됩니다.

물론 심미적인 만족감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아주아주 뛰어납니다. 실제 왼손을 얹었을 때의 느낌도 매우 좋고요. 휠이나 ALT, 방향키의 배치도 처음엔 어색하지만, 쓰다 보면 납득이 가는 배치라고 생각합니다.

단, 문제는 대부분의 게임이 n52te가 커버하고 있는 QWER, ASDF, ZXCV 범위를 넘어가는 키를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물론이고 주 사용처라고 할 수 있는 FPS 게임도 가볍게 이 영역을 벗어납니다. 일단 숫자키는 말할 것도 없고, M, T, B, P 등 키보드에서 보통 오른손으로 타이핑하는 위치에 있는 키들을 요긴하게 사용하죠.


n52te는 기본적으로 CTRL, ALT 키를 가지고 있고, 모든 키를 리매핑할 수도 있으니 저런 키들을 죄다 n52te에 할당해 쓸 수도 있겠지만, 게임 기획자가 나름 표준으로 지켜지는 룰에 따라 배치한 기본키를 다 바꿔가면서까지 n52te에 익숙해지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보이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게임 중 채팅을 하기 위해 어차피 키보드를 써야 하는 상황도 많을 거고요.

오히려 조금 엉뚱하지만 전문적인 컴퓨팅 작업 시 단축키나 매크로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키보드 왼편에 이런 보조장비가 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빈번한 반복 작업을 미리 n52te의 매크로로 지정해두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왼손에 휠이 하나 더 있는 것도 활용하기에 따라 큰 매력이 될 수 있고요.


따라서 n52te는 포장에 적힌 내용과 달리 '격하게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보다는 약간 느긋하게 최소한의 키를 사용하면서, 리매핑 정도는 할 수 있는 럭셔리 게이머에게 적합한 제품이 아닐까 합니다. 혹은 본래 용도에서는 벗어나지만, 특수한 목적으로 단축키나 매크로 기능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분들에게도 좋은 제품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용성은 제쳐두고라도 일단 보기만해도 갖고 싶어지는 이 디자인에 6만원 정도 투자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구입할 만 하고요. 제 경우에도 일단 마이크로소프트 Reclusa 키보드와 함께 두니, 자주 쓰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뿌듯함이 들더군요. (둘 다 결국은 Razer에서 만든 것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

참, 구입 전에 한 가지 더 참고할 점은 지금 사용하는 키보드 좌측 상단에 USB 포트가 있는 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n52te를 사용하시기 훨씬 편리하다는 겁니다. 본체나 따로 놓인 USB 허브로부터 선을 끌어오려면 꽤 거추장스러워 질 수 있습니다.

결국은 Reclusa까지 지르라는 이야기가 되나요.

[장점]
매력적인 디자인!
모든 키를 리매핑할 수 있음
매크로 기능

[단점]
대부분의 게임에서 활용에 한계가 있음
스페이스바(15번 키)의 키 감이 좋지 않음
보조장비치고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 (6.9만원)

[LINK]
벨킨 n52te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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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09:36 신고

    저는 맥과 함께 powermate라는 보조 입력장치를 이용 중인데 스크롤과 화면 확대와 창 닫기 기능을 배치해서 이용 중입니다. 무척 편리하더군요. 표준형 키보드를 이용하는 사용자라면 상기와 같은 세컨드 입력장치에 자주 사용하는 단축키를 배정해서 컴퓨터 사용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게임은 잘 안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웹서핑이나 포토샵, 프리미어, 음악 재생과 TV 재생 및 오피스 문서 사용 시에 n52te의 단축키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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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까무스
    2009.12.04 22:08 신고

    혹시 비행 시뮬레이션과 같은 게임에서 엄지용 조이스틱 사용이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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